오래된산행기

계방산(2002.02.02)

조진대 2021. 5. 3. 10:44

계방산 (1,577m) (2002.2.2)


 

새벽 5:35 집을 출발, 88도로-중부-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둔내 휴게소에서 아침을 사먹고, 속사IC로 나가 6번 진부방향-31번 창촌 방향으로 간다. 신약수,구약수(방아다리약수)를 알리는 안내판에 이어 이승복이 다닌 핵교가 나오고 이승복 기념관, 그리고 고개가 시작되는 버스정류장에서 부부를 태웠다.

 

이들은 서울 수서에 사는 사람들로 어제 와서, 운두령 까지 올라 지형을 관찰한 후 하룻밤을 자고, 차를 "아랫삼거리"에 대고 버스를 타고 운두령으로 갈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단다. 우리도 산을 타고 다시 운두령으로 오지 않고 한바퀴 돌아 아랫삼거리로 와서 그들 차로 운두령으로 다시 가면 되겠다고 부탁을 했다.

 

버스한대가 한 무데기 사람들을 내려놓고 내려가고, .8:55 운두령 왼쪽 흰 천막이 몇 개있는 공터에 차를 세우고는 산행을 출발한다. 길을 만드느라 깎아놓은 경사면에 계단을 만들었는데, 그 계단은 눈이 쌓여 주의해야 했고, 몇십 미터를 가파르게 올라간다.

 

수서 부부는 거기서부터 우리 뒤에 서게 됐고, 우린 쉬지 않고 내리막, 약간 오르막, 다시 내리막을 거듭하다, 긴 오르막이 시작되는 중간에서 버스에서 내려 앞서간 젊은이들 한 무데기를 추월해서 갔다. 길은 계속 오르막이다.

 

10:15 헬기장에 도달하고, 石柱 안내판에 정상 0.8Km를 보인다. 출발지부터 보이는 상고대 (습기가 나뭇가지에 얼어 붙은것)는 점점 두께가 두터워져 이제는 졸업식장 앞에서 파는 나뭇가지에 하얗게 묻힌 바로 그런 모습이 되어있다. 산은 구름으로 가리워 가끔씩 문을 열고는 환한 햇살을 보여준다.

 

주목이 보이고 그 위에 덮힌 눈은 아직 그대로 얹혀있고 거기에 구름의 습기가 얼어붙어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는데, 산을 휘어 감고 흐르는 구름이 더해져서 괴기영화에나 나옴직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군 제트기가 굉음을 내고 우리 위를 지나가지만 구름으로 보이지는 않고 소리만 찢어질 듯 요란하다. 5-6명이 눈길을 풀풀 거리며 하산을 한다. 운두령에 두어대 차가 서 있었는데 그들 임자인가 보다.

 

바람은 점점 세게 불고, 드디어 10:36 정상에 닿았다. 정상은 헬기장 같은 조그만 광장이 있고, 한옆에 뾰족하게 3-4m높이 위에 정상 표지석(1,577m) (GPS1,590m) 이 서 있다. 태백산 정상처럼 바람이 불고 춥다.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건전지가 소모되어 아쉬움만 남기게 되었다.

 

바람을 피해 정상 옆으로 돌으니 거기에 대 여섯명의 사람들이 요기를 하고 있다가 자리를 피해준다. 정상주를 한모금 한다, 치즈와 오징어를 안주로...그리고는 하산이다. 경사지고 미끄러운 나무 턴널속을 지나고, 커다란 주목 눈집 밑을 지나면서 길은 점점 경사지고 두텁게 쌓인 눈은 미끄럽기 그지없다.

 

가다 뒤돌아보는 정상부근은 두터운 눈이 나무 위에 쌓여 정말 멋있는 나무 눈산을 이루고 있다. 마누라는 쏜살같이 내려가고, 난 엉거주춤 거리다가 옆으로 휘까닥 미끄러지면서 왼손으로 눈을 짚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몸이 꺾여지면서 왼쪽 갈비속 횡경막에 충격을 주었나 보다. 숨을 못 쉬게 아파 왔고, 소리를 쳐서 마누라를 불렀으나 저만치 내 지른 마누라는 대답이 없다.

 

아이젠 안 찬다고 자랑하더니만 이거 여기서 쓰러지나 ? 겁이 더럭 난다. 옆꾸리가 아파 걸을 수가 없다. 눈길 위에 쪼그리고 앉으니 그대로 발 스키가 되어 빠르게 하산이 된다. 너무 빠르다 싶으면 두발을 V 자로 벌려 속도를 조절하고, 등산화 바닥의 홈은 무용지물, 등산화는 잘 미끄러지는 스키가 되었다. 내달리는 속도감에 옆구리 아픈건 잊혀진다.

 

한참을 그렇게 내려오니 마누라가 기다린다. 아프다고 위로를 받기는커녕, 싸다고 약만 올리고, 내가 독재자라나 ? "에이 이 대중이 같은 독재자야" 하고 약만 올린다. 내 어이해 이런 여자와 함께 사노 ? 서러움에 눈에서 눈물이 쏘옥 나오는걸 참았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은 사뭇 발 스키로 내려왔다. 그렇게 하는게 아픔을 잊고 쉽게 내려오는 방법이라서...

 

눈 덮힌 계곡길은 무척 길었다. 계곡은 얼어붙고 그 위에 눈이 쌓여 있으며, 얼음 속에서 졸졸거리는 물소리만 났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계곡은 넓어지고 길도 넓어진다. 마찻길 같은 넓은 길이 나오고, 그러나 아직도 길엔 두터운 눈...눈앞이 넓어지고 철망이 쳐있다.

 

운동장 같은 한옆엔 족구장 같은 시설이 있고, "국유림관리초소"라 쓴 조그만 초소가 서 있다. 계방교를 건느고 다시 광장이 나오는데, "이승복 생가"가 있다. "아이고 오늘 완전히 길게 돌았구나" 중간에 능선으로 하산하는 길을 보지를 못했는데... 넓은 길을 따라 오면서 땅 분할판매, 군 훈련장, 개 짖는 동네를 거쳐 31번국도변 버스정류장에 닿았다(13:07).

 

수서 부부는 오려면 한시간을 더 걸릴 꺼라고 길건너 송어횟집에서 버스시간을 물어보니 2시에 온단다. 지나는 차를 손을 들어 태워달라고 사정 하지만 하나같이 횡 그냥 지나친다. 시부럴 놈들...

 

30여분은 그러다가 송어회를 배달하는, 운두령으로 막 출발하려는 트럭을 얻어 탔다. 서울서 살다가 고개 넘어 내면에서 송어 양식장을 운영하면서 배달도 하는 사람이란다. 운두령에서 차를 회수하고 고개를 꼬불꼬불 내려오는데, 전조등을 번쩍하고 수서 부부가 지나면서 손을 흔든다. 그들은 중간 능선으로 하산을 했단다. 한시간이나 단축되는 길을 우리보다 40분은 늦게 돌은 거다.

 

마누라를 태우고 6번국도가 나오는 속사리 기사식당에서 청국장으로 점심을 하고, 난 횡경막이 아파서 마누라에게 운전을 맡기고는 코를 드렁드렁 골며 서울로 왔다.
가슴이 아파 맘대로 뒤척이지도, 구부리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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