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용아장성 (2001.09.01-09.02)
산행참가(7명):박용석,박원주,남기환,이경민,김민향,조래권,래권부인
용(龍)의 이(牙) 모양이라서 龍牙稜 이라고 이름지어졌다. 내설악 구곡담 계곡과 가야동 계곡을 양옆으로 갈라놓고, 수렴동에서 대청봉간에 하늘과 맞닿는 병풍처럼 놓여진 稜線. 설악에서 가장 험하다는, 그래서 산을 탄다는 사람들 간에는 평생 한번은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先望과 그 危險함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이름 "龍牙長城".
3십여년을 함께한 山동지로서 마누라와 언젠가는 함께 해야겠다고 십수년을 두고 별러 왔었는데, 얼마전 갑자기 용석이 "용아를 한번 가보지 않겠어 ?" 하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그래" 대답을 하고는 준비를 해왔다. 우선 헐어빠져 내버린 릿지화를 새로 구입했고 그동안 소원했던 도봉의 냉골-칼바위간 코스를 연습 삼아 다시 했다. 용아능선을 산행후 인터넷에 올려진 산행일기들을 삿삿이 찾아 코스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사용할 기회가 없어 먼지가 얹힐 정도로 한구석에 버려진 보조자일과 카라비나등을 꺼내 정리하며, 이제 너희들의 실력을 발휘해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식 돌보듯이 잘 말아 제일 멋있는 자루속에 넣었다.
산행중 소모된 기력을 회복해줄 간식을 두 번째 잘생긴 자루속에 넣고...20m 수직벽과 소위 개구멍의 꿈을 그리며 기다리기 2-3주, 드디어 9월1일(토) 出征일이 되었다. 회사에는 월요일 나오기 어렵다고 해놓고는 금요일밤 수퍼에 들러 공동 준비물을 사서 씻어놓고 아침일찍 일어나 홍당무,소시지,양파를 채썰어, 행동식 재료를 칼질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짐보따리를 싸서 10시 가까이 용석과 민향이 몰고온 차에 싣고는 경민이 사는 은마아파트로...경민도 신이나 있었다. 팔당대교를 지나 양평을 향하면서 홍천의 조남식에게 전화를 한다. 지나는 길에 얼굴을 봐야지 그냥 가면 욕먹을 것 같다고, 그래서 바쁜 남식을 만나기로 하고 홍천 시내로 가서 남식 부인까지 합석하여 삼계탕을 들었다. 그런데 동작이 빠르지 못해 남식에게 신세만 지고 왔으니, 잘먹은 점심이 산행에 도움이 되는것엔 기뻣지만 웬지 빛만진 것 같은 기분이다.
신남,관대리를 지나면서 경민은 더욱 신이 나서 軍생활때를 回想한다. 구성포 휴게소에서 박원주(성동12.5회) 남기환(모두 내 한양대 電子과 同文이지만 용석의 친구)을 만나고는 두 대의 차를 몰고 용대리로 가서 백담사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15:00). 백담사 3Km전 까지 버스를 탔고, 걸어서 백담사를 가니 전에 없던 큼직한 "內雪嶽百潭寺"일주문이 반기고, 백담산장을 거쳐 영시암터엘 왔는데, 이곳 역시 전에없던 사찰이 하나 지어져 있다.
용아정성 지도
식사재료,자일,수동식 카메라 등등을 넣은 배낭은 쌀가마 만큼이나 무거워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온다. 영시암에서 물을 마시며 쉰다. 수렴동 대피소엘 오니 17:30, 잠자리 체크인을 한다. "용아장성은 출입금지이니 알아서 하세요" 대피소 관리인의 말이다. "누가 지키나요 ? 몇시부터 ?"하는 나의 순진한 질문에 그 관리인 대답 "내가 지켜요!" 하면서 눈알을 굴리며 쳐다본다.
서둘러 저녁준비를 한다. 버너에 삽겹살을 구으며 소주,한약재료를 넣은술,죽엽청주를 돌리고 내일 산행에 대해 말을 나누고 있는데, 술이 약간 들어간 등산학교 T-셔츠 차림의 젊은이 하나가 끼어든다. "내일 용아를 하시지요 ?" 아무말 않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니 "사실대로 말씀하세요, 다 아니까.." 그래서 머뭇머뭇 간다고 했더니, 자기는 어느회사의 산악회장인데 150여명 직원을 데리고 용아장성을 할려고 사전 답사를 나왔단다. 그런데 한번도 안 해봐서 코스에 대한 의견을 들을려고 한단다. 산꾼이라는 반가움에 소주한잔을 권하고 그 동안 주어 얻은 정보에 대해 말하며 걷는 산행만 한사람은 어렵고 적어도 북한산 원효봉 코스나 도봉의 냉골은 해봤어야 된다고 하니 더욱 바싹 다가앉으며 "모두들 용아를 한 경헙이 있나요 ?" 한다. 그래서 소주를 한잔 더주고, 용석이 말을 받는다. "나도 등산학교 나왔는데" 그러면 누구를 아느냐고..그친구 눈을 껌뻑 거리더니 "아! 압니다" 한다, 그런 얼마후 용석이 호통을 친다 새까만게 누구한테 찐따 붙냐고...그렇게 쫒아 보냈다. 우린 이사람을 용석후배라고 이름 지었다.
저녁을 먹고 배정 받은 계단위 이층, 자리가 펴진 마루위에 누어서, 제발 왁자지껄 떠들지 말아다오 기도하면서 잠을 청한다. 잠결에 위 3층에 누군가 들어가서는 "야! 자리가 널널한데" 하는소리에 잠을 깨고, 삐거덕 댈때마다 얼굴에 무언가 떨어지는 것 같아 손으로 얼굴을 훔친다. 잠은 들었다 깨었다.
3시반은 될성 싶은데, 쌀이 어디 있냐고 민향이 잠을 깨운다. 잠도 오지 않고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머리아픈 공기보다는 밖이 나을 것 같아 듣지 않는 후래쉬를 도로 집어넣고 깜깜한 방을 장님 손뻗쳐 휘져으며 신을 찾아들고 사다리를 내려서고 문을 열고 나온다. 휘영청 밝았던 보름달은 서쪽으로 졌는지 깜깜한 식탁에서 민향과 마누라가 밥을 짖고 있다. 화장실 칸수는 많은데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윈드쟈켓에 밴 냄새가 30분은 가는 것 같다. 저쪽 백담사 방향에선 간간히 후래쉬 불을 비추면서 등산객이 몰려오고, 대구에서 단체로 왔다는 아줌마 아저씨 부대는 잠깐 입에 뭘 넣어 우물우물 하더니 용아릉으로 올라간다.
한참을 지나니 날이 새어오고, 아침을 먹고 행동식을 싸서, 배낭을 작은 것으로 바꾸어 메고는 출발준비를 한다. 큰 배낭은 대피소에 맡겼다. 용석후배(나중에 수렴동 노숙자라고 했다)가 새벽 어둠에 눈을 비비며 하는 말 "용아 코스는 위험합니다. 가지 마세요" 하더니 내 얼굴을 기억하는지 피해 버린다. 술이 좀 덜 깬것 같다.
06:05, 출전하는 카미가제 조종사 마냥, 마음을 엄숙하게 잡아먹고는 대피소 출입문 동쪽에서 바로 시작되는 80도 경사를 오른다. 첫째 봉우리에 15분동안, 두 번째에 5분, 세 번째에 또 10분, 가파르게 오르는 동안 쉬지 않는 걸음에 속이 뒤집히고 구역질이 난다. 흙산을 지나고 岩綾으로 접어들었다. 대피소앞 계곡이 절벽아래 내려다보인다. 암릉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내려서고 진행한다.
옥녀봉을 올라가는데 젊은이 둘이 앉아 쉬고 있다, 전날 봉정암 쪽에서 용아를 타다가 "개구멍" 에 막혀서 우회로를 탄다는게 가야동 계곡으로 내려 왔는데, 못탄 구간을 가보고 싶어 반대로 탄단다. 이들을 뒤에 붙게 하고 가능한한 안전한 우회로를 탄다.
바위 봉우리를 내려서니 1m정도 뛰어 건너야 하는 "뜀바위"이다. 나중에 백담사입구에서 저녁을 하면서, 6-7년 구조대 근무를 했다는 식당주인 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이곳에서 무수한 젊은이들이 떨어졌단다. 여기서 墜落死 하면 수백 미터 절벽아래 구곡담계곡에서 시신을 찾아야 한다고...엉겹결에 뛰어 건넜다. 거기에서 10여분 더가니 비석이 서 있다. "고 이옥임" 이라고 썼는데, 이곳에서 사망한 모양이다. 비석을 우회했다.
촛대처럼 생긴 바위로 올라야 하는 어려운 구간이다. 촛대바위의 모서리를 홀드와 스탠스를 이용해 오른후 왼쪽으로 발을 뻗어 10여m 바위를 트래버스 해야 한다 이곳을 지나면 50m쯤 위에 나타나는 7-8m 절벽을 홀드와 나무를 잡고 올라야 한다. "아! 오세암" 하고 박원주가 신음을 한다. 북쪽으로 만경대와 오세암, 그리고 그뒤로 공룡능선. 남쪽으로 귀때기 청봉, 구곡담 계곡의 등산로와 다리들이 아득히 내려다보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것 같다. 너무나 경치가 좋아 넋이 빠진다. 앞이 너무 험악스러워 보인다.
앞서간 민향이 "헹이요 이거 어려운데예 ?" 한다. "여기 지나 갔었냐 ?" 용석에게 물으니, "이새꺄 내가 어떻케 다 기억을 해!" 내 뱉는다. 아래 어디 우회로를 찾아보겠다고 남기환이 내려갔지만 우회로가 보이질 않으므로 죽으나 사나 정면돌파를 해야 한단다. 저 아래를 오를 때 멀리 위에 올려다 보이는 이곳에 빨간 자일을 걸쳐놓고 오랜 시간 단체팀이 악전 고투하는걸 보면서 왔는데 여기가 바로 거기이구나. 여기서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마누라는 "난 못갈 것 같아" 하면서 뒤로 물러선다. 우린 자일을 꺼냈다.
뒤에 섰던 젊은이 들은 자일을 보고는 "우린 목숨이 아까워요" 하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자일을
허리에 묶고는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여 툭 튀어나온 바위를 안고 돌아, 배낭 뒤에 닿는 바위를 몸을 낮추어 팔 굽혀 펴기 자세로 통과, 왼발은 밖의 발판으로 디디고 우측에 설치된 슬링을 잡고 몸을 앞으로 당겨 안전지대로 와서는 자일을 풀어 바위에 안전하게 잡아매고는 오늘 산행 리더인 용석에게 "통과" 하고 외친다.
두 젊은이들이 까마득한 계곡아래 숲에서 소리친다 "조심하세요" 그들은 우회로를 찾았다. 한사람씩 차례로 묶어 확보를 한 다음 통과했다. 여기가 바로 그 "개구멍"이다. 함홍철씨가 여기서 떨어졌단다. 바위벽에 이곳에서 墜落死한 사람들을 위한 비문이 동판에 새겨 박아 놓았다. 배낭은 작은 것이 목숨을 부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시 2m의 절벽을 왼손으로 가설된 슬링을 잡고 오른손을 뻗쳐 바위틈 홀드를 잡고 왼발, 그리고 오른발을 올려 힘을 써야 한다.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이 추락사 했다 한다. "위험지대 통과" 소리쳤다.
개구멍 통과후 바위를 오르는 용석
이제 부턴 이보다는 쉬운 그렇다고 얕잡아 봐서는 안될 그저 오르고 내리기만 하면 되는, 그러나 진 빠지는 코스이다. 능선위 바람은 냉장고 바람이지만 해는 따갑게 비추고 부족한 물을 마음대로 마실수 없어 그늘을 찾아 쉬어야 했다. 아침으로 한 숫가락 먹은게 후회된다. 그저 용석 처럼 아구작 아구작 먹어뒀어야 지금쯤 든든하게 오를텐데... 배낭 무게를 줄릴려고 서로들 먹을게 있으면 내어놓는다. 쵸고렛을 먹는다. 무척 달아서 물을 마셔야 했다. 쵸코렛은 흡수속도가 빨라 기운을 차리는데는 효과가 좋다.
휴식
휴식
부족한 잠에 머리는 어질어질, 허기진 배는 눈을 들어가게 하고, 목마름에 입술은 타들어 간다. 우측 아래로 쌍폭중 하나가 보인다. 거기에 물이 하얗게 흐르고 그게 마시고 싶다. 우뚝선 눈앞의 바위봉을 우회하여 내리고 또 오르고, 다시 내리고 오르기를 몇십번 반복한다. 절벽사이 바위벽에 금강초롱이 붙어있다.
뒤 돌아보는 용아능
전방의 용의 이빨같은 암봉들이 삐죽삐죽, 그 뒤로 대청봉의 돔이 보인다. 왼쪽은 계속되는 공용릉, 우측엔 서북주릉, 백운동 계곡, 곰릉, 구곡담 계곡이 파노라마 같이 펼쳐진다. "아! 壯觀이다" 멀리 눈위로 누에고치대 같은게 보인다. 그곳이 봉정암 이다. 그러나 그곳까지는 아직도 머나먼 길이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봉정암이 얼마나 남았나요 ?" "좀 더가서 20m내리막을 가서 한 봉우리 지나면 됩니다" 힘은 빠지고 물이 부족하니 행동식을 먹을수도 없고 쵸코렛을 입에 넣으며 허기를 달랜다.
20m 직벽 내림길
"난 봉정암에 가면 제일 먼저 물을 3바가지 벌컥벌컥 마실래" 하는 말에 용석이 받는다, "20m 내리막이 보이면 남은 물을 다 마셔도 좋다" 그러나 그놈의 20m가 언제나 나타날는지. 내리막을 엉금엉금 내려서서 왼쪽으로 홀드를 잡고 기어오르니 바위 등성에 올라앉은 사람이 보이는데, 앞선 민향이 소리친다 "여기 절벽이네예" "그래 ?" 바로 20m 직벽이다. 그 위에 올라 앉으니 찬바람이 확확 불어주어 시원하다. 직벽에 줄이 매어져 있다. 촘촘히 바위홀드가 나와있어 그냥 내려가도 되지만 내려다보는 느낌이 아찔하여 줄을 잡고 엉금엉금 긴다.
내려서서 능선을 넘어 아래로 한참을 향하다 보니 구곡담 계곡에서 오는 길과 만나고 몇 십미터 앞에 우람하게 지어진 봉정암이 나온다. 아! 이제 용아장성을 끝냈다(13:00). 난 물을 2바가지반 마셨다. 그늘에 앉으니 땀으로 젖은 몸이 추위로 떨려온다. 얼른 양지로 가서 땀을 말리며, 행동식을 먹는다.
절에서 49제를 지냈는데, 차렸던 곶감,바바나,사과등을 먹으라고 내어놓았다. 휴대전화의 전파가 뜨는데 통화는 어렵다. 성산회원들은 어디쯤 모여서 식사를 하는지 왁자지껄한 소리만 잠시 들을수 있었다.
13:25 봉정암을 출발, 수렴동대피소로 향한다. 어디 인적이 없는데서 목욕이라도 하자고 졸라대지만 6시에 버스가 끊어진다고, 쉬지도 않고 내리쏜다. 구곡담에 줄줄이 흘러 내리는 그 많은 폭포를 지나는 눈으로만 감상하면서...다람쥐가 놀다 가라고 자꾸만 길를 막는다. 이곳 다람쥐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함께 논다.
잠시 짬을내 계곡물에 머리를 담그니 눈이 쓰라려 온다. 너무 많이 흘린 땀의 소금기가 눈으로 들어와 얼굴을 씻고 또 씻는다. 땀 냄새에 찌든 행커치프도 빨고...
15:30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 맡겨놓은 큰 배낭을 찾아서 바로 출발, 조금 오니 수렴동 노숙자가 길에 배낭을 맨채로 쓰러져 있다. "용석이 닮은놈, 저러다 언제 내려 갈라나 ?"
영시암을 지나 간간히 내려주는 시원한 이슬비를 맞으며 백담산장을 지나 17:40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소낙비가 한줄금 쏵 쏟아진다. 백담사 입구 순두부집에서 저녁을 먹고는 서울로, 관대리부터 막히는 길을 멈추었다 달리다. 새벽 1시반에 집에왔다.
입장료 2,600원, 버스 편도 800원, 주차비 하루4,000원, 산장숙박 3,000원, 담요 2,000원, 산장소주 5,000원,맥주 3,000-3,500원(시간에 따라 다름), 밥 2,500원
전화한통화 1,500원
수렴동대피소 033-462-2576